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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동학농민운동, 태평천국운동, 그리고 장학량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역사적 숙명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역사적 숙명

 

19세기 중국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편전쟁은 중국이 영국무역상의 아편을 몰수한 것을 빌미로 1840년 6월에 시작된 전쟁을 말합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중국이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에 패했다는 얘기는,

비유하자면 미국이 쿠바에게 완전히 점령당했다는 얘기처럼 충격적인 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20세기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단연 6.25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520만명의 사상자와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도올 선생님께서는 ‘아편전쟁’만큼 비중이 크며

한국, 중국에 똑같이 영향을 준 사건이 있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아편전쟁 이래로 조선에서는 동학이 생겨납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지배자들은 나라 밖 상황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편전쟁이 시사하는 바를 아는 자는 많이 없었습니다.

 

(강연 이외에 내용이지만 이러한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접촉 경로에 인해서 이기도 합니다.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의 광동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운동입니다. 그러나 동북 내륙에 위치해 있는 청나라의 왕실은 아편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 비해 그 심각성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청나라의 왕실을 통해 내륙으로 교류를 하는 조선은 당연히 그 아편전쟁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해양을 통해 청나라와 교류하던 일본은 이에 대해 일찍이 실감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국제 정세의 변화를 감지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최제우였습니다. 

 

최제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조선 말기의 대사상가로 외세에 항거하며, 한민족 고유의 사상을 융합하고 동학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동학의 근본 사상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의

인내천(人乃天)인데

이는 인간이 모두 존엄하고 평등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근대 정신의 발현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중국에서 일어난 운동이 바로

태평천국운동입니다.

 

아편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양의 은 유출로

 

청나라에서는 경제위기가 일어나고 전국민은 아편에 병들었습니다.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패배하고

홍콩 할양, 5개 항구 개항이라는 불평등조약인 남경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더해 청나라 농민들의 부담은 가중되었으니

농민, 수공업자를 주축으로 태평천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태평천국 운동의 창시자 홍수전은

세상구원, 하나님, 평등사상을 접하고

1851년 이상국가 '태평천국'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태평천국의 기본적인 이념은

동학과 궤를 같이 합니다.

바로 평등사회 건설 및 토지 균등 분배를 주장하는 것이죠.

 

도올 선생님이 이런 ‘태평천국운동’ 이야기를 하신 이유는 바로 ‘장학량’ 때문입니다.

 

장학량은 중국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서안사변 당시 장제스를 구금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장학량이 15세 때 장백령과 있었던 일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날 장백령이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이에 장학량은 당돌하게 “당신이 누군데요?

허풍아닙니까?" 라고 말합니다.

 

이에 장백령은 

“여기서 ‘나’는 바로 ‘너’다. 너야말로 중국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다. 동북의 주인이 되어라”

이 연설을 통해 장학량은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후로 장학량은 동북강무당에 입학하고 위대한 스승이신 곽송령을 만납니다.

장학량은 장군이되고 스승 곽송령은 그 밑에 참모장이 되어 곽송령의 전법으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곽송령은 일본군이 아닌 같은 중국인들끼리 싸우고 패권주의만 확대되고 있는 지금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본 시찰중 장작림이 일본군과 내통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동북군에 등을 돌리게 됩니다.

결국 1925년 최정예 엘리트 부대인 곽송령 부대는 도과(반란)를 선언합니다.

 

장작림은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곽송령을 절대적으로 신임했습니다.

 

장작림은 곽송령 토벌 대장으로 장학량을 세우게 됩니다. 사제지간에 비극이 생겨난 것이죠. 

장학량은 곽송령에게 만날 것을 수 차례 부탁하지만 거절당하자 아름다운 편지를 쓰게 됩니다.

 

"

량, 천만 번을 죽더라도 어찌 감히 승명하여 

천추오역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오리까?

군자는 사람을 덕으로 아낄 줄 알고

오형은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데

하필 이렇게 상핍하여 대적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결국 그 둘은 만나지 못하고 장학량은 묘수를 씁니다.

‘장가 밥 먹은 사람은 절대 장가를 치지 않는다’ 라는 

삐라를 비행기로 뿌리니 장병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 도과는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곽송령과 그의 아내는 붙잡혔는데요.

곽송령을 죽이지 마란 장작림의 명령을 무시하고

군대 비리가 새어나올 것을 두려워한 양우정이 서둘러 사형을 집행합니다.

 

결국 장학량은 죽을 때 까지 스승 곽송령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는

“이들이 살아있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

라고 말합니다.

 

서안사변의 핵심은 바로 이 사건 속에 있습니다.

장학량은 “아무리 정당한 명분이 있더라도 인간적인 배신을 해선 안된다.

송미령과 장개석한테 도과할 지언정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슬픔을 주지는 않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 이후 서안사변으로 장개석을 감금하지만

국민당 공산당의 내전 중지를 요구하고 장개석을

국공 합작 조건으로 석방하게 됩니다.

이후 장학량은

“대의는 택했지만 인간적인 슬픔은 주지 않겠다”

라고 말하며 자신은 54년동안 자진 연금됩니다.

 

이후 국공합작은 막을 내리고 또 한 번 내전이 시작되고 결국 패권은 공산당이 차지하게 됩니다.

 

 

도올 선생님은 강연 끝에 

“인간이 어떻게 역사를 변혁하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어려서부터 실천 속에서 뼈아픈 기쁨과 슬픔을 체험하면서 크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은 함부로 키워지는 게 아닌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동학운동, 태평천국운동, 그리고 장학량까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역사적 숙명"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다룬 장황한 역사적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를

한 페이지의 글로 다 담아낼 수는 없겠습니다만

하지만 도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치뤄진 선거 또한

'더 나은 사회로의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올 선생님께서 이번 선거는 20,30 대의 혁명이며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서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반증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한국 정치는 젊은이를 위한 정치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FIFA회장

    중국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